박응양 (朴應陽) 애국지사는 반남박씨(潘南朴氏) 23세손(世孫)으로써, 경남 산청군 금서면에서 출생하였고,이명은 명언(明彦)이고. 춘당공파입니다.
제칠(齊七)의 아들이고, 억동(億東)의 손자이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한을 항상 품고 있던중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산청군내에서 3월 22일 산청 장날을 기해 일제 봉기토록 하기위하여 동년 3월 18일 산청면 새동 수계정에서 민영길, 신영희, 오원탁, 신창훈,애국지사등과 같이 결의하고, 태극기를 등을 준비 하였다.
그러나 당시 군수였던 홍승균의 밀고로 일본 헌병에 검거 되었으나 단순 가담자로 분류되어 가혹한 고문과 삭발만 당하고 귀가하여 은둔하다가 예정대로 3월 22일 주민 400 여명을 민치방과 같이 진두 지휘하다가 일본군의 군도에 맞아 바른쪽 귀와,팔을 완전 절단 당한채 귀가하여 불구의 몸으로 7년간 투병하다가 1926년 7월 30일(55세) 여생을 마쳤다.
이로인해,대한민국 정부에서 그 공을 기리기위해 故 박 응 양(朴應陽) 애국지사에게 1997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NO:19-002766)을 추서했다.
이듬해, 대전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NO:750)에 부인 배성옥(裵性玉)여사와 함께 새로이 안장 되었다.






























